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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미니어처 품은 대평원…베드랜드 잔혹사

노컷뉴스 (뉴스) 2012.04.27 17:03 조회77
여행 해외여행
[CBS 이재기 기자]


지금은 2012년 4월, 미국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지도 어언 3년이 흘러가고 있다. 그랜드캐년이나 옐로우스톤 같은 신대륙의 명승지를 둘러보면서 느낀 감흥, 사진으로 기록된 멋진 장면, 아름다운 추억들을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서 펜을 들었지만 일천한 글재주의 한계가 크고 또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니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돌았다.

글 쓰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이었을까?

수 개월 정도면 여행기 한 권은 너끈히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건만 막상 작업을 시작하고 보니 정말이지 예삿일이 아니었다. 기사나 보고서 처럼 마감시한이 따로 정해진 것도 아니고 누군가 재촉하는 사람도 없으니 차일피일 미루기 십상이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했어도 이렇게 긴 세월이 걸리지는 않았을텐데 그렇다고 대충 쓰는 것은 스스로 받아들이기 힘들어 최근에는 글쓰는 고민에 사로잡혀 늘 개운치가 않다.

사실 베드랜드(bad lands) 이야기도 이미 끝냈어야 하는데 거쳐간 지 3년이 다 돼 가는 지금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제 때를 놓쳐 기억이 가물거리기도 하고 그 경치를 본 생경함이 반감된 것도 사실이지만 아름다운 경치를 본 그 감상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당시 지나갔던 길, 들렀던 곳, 베드랜드의 기묘한 봉우리 모든 것들이 봄날 아지랭이 처럼 하나 둘 피어 오른다.







베드랜드는 북아메리카의 대자연을 둘러보는 여행들 가운데 마지막이었고 3번째 서부여행의 출발이었다. 남부지역을 둘러본 뒤 미주리에서의 4,5월은 무료한 일상이 반복됐다. 미국생활의 내공이(?) 쌓여 낯설다는 느낌이 사라지고 미국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학교생활에 한창 재미를 내던 때라 특별히 손이 갈 곳도 없었다.

5월초에는 미주리 주립대도 일찌감치 긴 방학에 들어가 2달 앞으로 다가온 귀국 날짜에 맞춰 살림살이며 자동차를 처분하고 귀국 때 가져갈 짐을 챙기면서 한가로운 나날을 보내던 때였다.

처음 살러갈 땐 그렇게도 어색했던 곳이었는데 떠날 날을 앞두고 보니 지난 1년 동안의 미국생활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묘한 감정의 여운이 심사를 뒤흔들었다.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적응의 동물인 모양이다.

미주리 콜럼비아시 서쪽 변두리 제나코트(Jeana court)에 있는 우리 집은 어느덧 위안과 안식을 주는 보금자리가 됐고 말상대로 여겼던 메리 선생이나 샐리, 아이들의 담임이었던 메리 디산티스와 신디홉스, 농구축구교실 학부모들은 그리움의 대상이 됐으니 말이다. 그래서 서부로의 3번째 여행은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만도 않은 이국생활을 갈무리하는 이별여행이기도 했다.

여행의 목적지는 미국 서북부에 위치한 와이오밍주 옐로우스톤, 거대한 화산지대엔 아직도 분화구 곳곳에서 유황 냄새 섞인 매케한 연기와 화산재가 분출되고 간헐천이 솟아 오르는 미국에서도 가장 원시 자연의 모습이 잘 보존돼 있는 곳이다. 자동차로 쉼없이 달려도 꼬박 이틀 이상이나 걸릴 먼 거리다.

그래서 여행의 재미도 더하고 마지막 여행의 여유도 즐길겸 두 개의 일정을 추가했다. 그 중 한 곳이 바로 사우스 다코타주 남서쪽에 있는 베드랜드 국립공원이다.

베드랜드로 가는 길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미주리를 출발해 켄자스시티를 거쳐 방향을 북쪽으로 튼다. 아이오와주를 지나갈 때까지만 해도 그나마 미주리강이라도 흐르고 야트막한 산들도 이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사우스 다코타주에 접어들어서 부터는 가도 가도 끝없는 목초지가 질릴 정도로 넓은 평원의 연속이다. 낮이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도 거의 없다. 목적지인 월(City of Wall)에 닿기 전에 본 인간의 흔적이라고는 고속도로 휴게소가 전부였다.

그 때 그 여행길 지금은 추억 속의 한 장면으로 남았지만 지금도 당시를 떠올리면 가슴이 묘하게 흔들린다.

'Everybody do like 이 밤 영원할 듯, 한번만 저 흔들림 속 나를 던져, 다행스럽게 먼저 다가와~~' 강한 비트에 실려 흐르는 멜로디가 감성을 자극한 탓도 있겠다.

아메리카 북쪽 지역 역시 초행길인 만큼 기대가 컸지만 적어도 이방인인 나와 그곳의 산천 사이에는 좁히기 힘든 간극이 있었다고 할까? 하지만, 한번 지나가는 길 그냥 스치듯 가긴 싫어서 준비했던 것이 음악이었다. 음악은 그 자체로도 인간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인간과 자연 사이의 간극을 빈틈없이 메워주는 매개체란 생각도 해본다. 그래서 인터넷을 일일이 뒤져 음원을 구입하고 다운받아 CD에 싣는(굽는)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미국에서 만든 CD가 네댓장은 될 것 같다.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만해도 끝없이 펼쳐진 평원이 신기하고 색달라 한동안 바라보기도 하고 차에서 내려 사진도 찍어보고 감상에 잠기기도 했지만 귀향이 다가온 지금 미국 중부의 대평원을 대하는 느낌은 많이 무뎌졌다. 산이 많은 한국에서 눈만 뜨면 산을 대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음악이 있으면 사정이 달라진다. 즐겁고 조금은 풍성한 느낌으로 여행길을 이어갈 수 있다. 좋은 음악이 있었고 조금 있으면 정든 땅을 떠난다는 적당한 감상이 있었고 좋은 경치가 있었던 3번째 서부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사우스 다코타주 경계내로 들어선 지 5시간 정도 지났을까?

주변의 초원은 사라지고 초원 사이로 황색과 짙은 갈색, 연분홍과 연녹색 바위산들이 눈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베드랜드였다.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방향을 잡았을 경우, 게이트 131번에서 주간고속도로 I-90을 벗어나 240번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남쪽으로 6.4킬로미터 정도 가면 베드랜드 국립공원의 북동쪽 입구에 이른다.

베드랜드의 첫 인상은 수백 수천개의 피라미드 미니어처가 설치된 테마파크 같았다. 산 모양을 한 지형의 크기가 작은 것은 수 십 미터에서 큰 것은 1천 미터 남짓한 것까지 다양한데다 퇴적지층이 선명하게 드러나 관광객들의 시선을 잡아 끈다. 독특한 것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불모의 땅이란 점이다. 그래서 베드랜드이다.

베드랜드의 주인이었던 수(the Great Sioux Nation)인디언들은 그 곳 불모의 땅을 'mako sica'라고 불렀다. 땅들이 나쁘다는(lands bad) 의미라고 한다. 생물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척박한 불모의 땅이지만 베드랜드는 아름답다. 크고 작은 삼각산은 생김새가 기하학적이고 입체적이어서 자연미보다는 인공미에 더 가깝지만 자연 그대로 이다. 무변광대한 녹색 초원과 완전히 고립된 수 많은 무채색 산들, 극과 극의 이질감이 주는 아름다움도 베드랜드가 유명세를 타게된 이유 가운데 하나다.




불모지 베드랜드의 규모는 98,240ha 약 2억 9천만평으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다. 베드랜드 내부를 관통하는 순환도로 총연장도 41km나 된다. 어떤 곳은 미니어처 처럼 산들이 앙증맞을 정도로 작고 계곡이 야트막하지만 가장 높은 레드 셧 테이블은(Red Shirt Table) 해발 1,020미터에 이를 만큼 높고 계곡도 그 만큼 깊게 패여있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공원 경내의 전체적인 경치는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미국 배우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늑대와의 춤을'(dance with wolves)이란 영화는 백인 중심의 세계관에서 탈피해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삶과 생존을 위한 투쟁을 그들의 시각에서 다룬 최초의 시도였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을 추구했던 탓에 영화는 흥행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작품성도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됐던 곳이 바로 베드랜드이다. 미국 남북전쟁의 북부연합 소속이었던 존 던바 중위는 개척지 최전방 프런티어 근무를 자청해 베드랜드 근처로 부임한다. 인디언들은 늑대와 함께 지내는 그의 모습을 보고 늑대와 춤을 이란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따금 나타나던 인디언들이 자취를 감추자 이번에는 던바 중위가 그들을 찾아 나서면서 그와 인디언 부족간의 본격적인 교유가 시작된다. 존 던바는 인디언들과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면서 점차 그들을 이해하게 되고 자신도 인디언의 한 구성원으로 바뀌어 간다.

그 즈음 그는 더 이상 미군 존 던바 중위가 아닌 '늑대와 춤을' 이란 한 인디언이 됐음을 절감하는 사건을 맞이한다. 프런티어로 첫 부임했을 당시 머물렀던 막사로 일기장을 가지러 갔을 때 그와 맞닥뜨린 미군들은 그를 인디언으로 취급했다. 인디언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하고 인디언의 시각을 가진 그는 미군들에겐 한낱 이방인일 뿐이었다. 인디언 전사들이 존 던바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백인 병사가 숨진 것은 미군과 수 부족간 최후 결전의 도화선이 됐다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다.

이 영화는 사우스 다코타와 네브래스카주를 근거지로 살아가는 수 부족과 미군 병사들 간에 벌어진 실화에 근거해 만들어졌다.

미국 정부가 백인 이주자(homesteader)를 정착시키기 위해 인디언들의 땅을 뺏고 보호구역으로 몰아 넣자 양측간 피의 대결이 시작됐다. 생존을 건 전쟁은 1890년 12월 정점으로 치달았다. 추장 빅 풋의 지도를 받던 일군의 수족은 운디드 니 크릭에서(wounded knee creek) 미군에게 습격당한다. 무장해제에 저항하며 결사항전했지만 양측에서 330명이 학살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끔찍한 참사가 빚어졌다.

이 사건은 대평원 인디언과 미군 사이의 마지막 대충돌로 역사에 기록됐다. 백인 기병대가 시시각각으로 생존을 옥죄어 올 때 베드랜드의 수 인디언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유령춤까지 고안해 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인디언 예언자의 제안에 따른 것이었는데 그들의 마지막 '고스트댄스'는 베드랜드 남쪽지역의 한 산 꼭대기에서 행해졌다. 하지만 백인들이 물러나고 그들의 사냥터가 복원될 것이란 희망은 결국 비극적인 살육전으로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역사는 늘 힘있는 자가 승자로 군림해 온 패권자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옐로우 스톤으로 향하면서 속으로 나는 생각했다. 운 좋으면 야생 버팔로를 볼지도 모를 일이라고.. 이따금씩 차장 밖으로 고개를 돌려보고 또 베드랜드 주변의 초원을 살피기도 했지만 야생 버팔로는 없었다. 그 옛날 인디언들의 주식이었던 버팔로 떼는 인간의 문명에 밀려 대평원에서 자취를 감춘 것 같았다.

혹 노스 다코타나 몬태나주에는 야생 버팔로가 있을 지 모르지만 가보지 않았으니 알 길도 없다. '늑대와 춤을'에 보면 수백 수천마리는 족히 될 것 같은 버팔로 떼가 지축을 흔들면서 평원 위를 달려가는 드라마틱한 장면이 나온다. 장관이다. 현대 문명 덕택에 아마 컴퓨터 그래픽이 버팔로들을 다시 살려냈을 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베드랜드 경내 세이지 크릭(Sage creek)근처에서는 버팔로를 볼수 있다고 한다. 마침 좋은 날씨여서 베드랜드를 관광하기에 더 없이 좋았지만 야생 버팔로를 보는 행운까지 누리지는 못했다.

북동쪽 입구를 통해 공원 경내로 진입한 뒤 '빅 베드랜드 오버룩' 전망대에서 한동안 넋놓고 경치에 빠졌다가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윈도우 트레일에서 베드랜드 탐사에 나섰다. 트레일의 길이가 가장 짧은 편에 속했지만 주변의 경치가 뛰어나고 간이 사다리를 통하지 않고서는 탐사가 어려울 정도로 나름 거친 지형이어서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 중 하나다. 왕복 1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탐방로 양 옆으로는 기암절벽이 산맥처럼 연결돼 있고 바위 기둥들은 잘 깎아낸 조각품 처럼 아름다웠다.




초입의 베드랜드가 수백 개 피라미드 미니어처 처럼 보였다면 윈도우 트레일의 베드랜드는 흙으로 만들어진 인공의 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변 산과 봉우리는 누런 황토색이고 만지면 금방이라도 허물어 질 듯 물러 보인다. 봉우리에서 흘러 내린 흙더미가 주변을 수북히 덮고 있고 물이 거의 마른 자그만 계곡에는 황톳물이 흘러간 흔적이 남아 있다.

탐방길의 끝 지점에 이르렀을 때 몇몇 관광객들이 숨을 죽인채 뭔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백인 부부에게 "무엇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직접 가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탐방로의 끝지점은 바로 낭떠러지였다. 벼랑에 연이어 저멀리 숲이 있고 숲 뒤로는 드넓은 풀밭이 시야에 들어왔다. 유토피아가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마치 창문을 통해 다른 세계를 바라보는 것 처럼 차안과 피안의 경계선상에서 깊은 사색에 빠졌다.

지금은 베드랜드가 된 지역을 포함해 그레이트 평원은 공룡시대 동안 따뜻하고 얕은 바다가 덮고 있었다. 바닷물이 빠지면서 밝은 핑크색과 녹색 침전물이 켜켜이 쌓인 층들은 기기묘묘한 지형으로 탈바꿈했다. 수 인디언들은 베드랜드에서 발견된 바다조개와 거북 등껍질 등 수생동물의 화석을 보고 베드랜드가 한 때 바다였을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한다.

베드랜드 순환도로(Badlands Loop Road)의 절반을 달려 240번 고속도로로 방향을 틀었다. 평원속의 도시 래피드시티로 향하는 길이다. 다음 여정은 큰바위 얼굴로도 잘 알려진 러쉬모어였다.
dlworl@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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